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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의 어린 시절

OKeverything 2007. 1. 9. 09:19

< 나의 어린 시절 >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강원도 두메산골의 수려한 경치와 맑은 공기이다. 나는 1951년 1·4 후퇴 때, 서울을 피해 가다가 우연히 정착한 경기도의 발안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산파도 없이 나를 낳았는데, 낳아놓고 보니 전쟁통이라 너무 못 먹어서 그런지 깡마르고 배배 틀린 원숭이 새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징그러운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 나는 아버지가 전쟁 전엔 취미로 했던 사진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게 되어 군속사진사가 되는 바람에, 군 부대를 따라 이리저리 이동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경기도 일동, 이동 근처에서 지내다가 그 뒤로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주로 강원도의 최전선 부근을 맴돌았다. 일동이나 이동에서 살 때는 너무 어렸을 때라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고, 강원도의 화천, 인제, 양구 등지에서 지냈던 일들이 지금까지도 간헐적으로 떠오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화천에서였고, 1 학년 말쯤에 서울로 전학하여 지금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아오고 있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인제의 경치이다. 인제는 내설악이 가까운 곳인 데다 최전방에 속했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었다. 내가 살던 곳은 강가에 집이 한두 채쯤밖에 없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집 앞은 잡초가 무성한 들판이었고, 멀리 높고 험준한 산맥이 바라보였다. 우리는 초가집 한 채의 방 하나를 세내어 살고 있었는데, 밤이면 산에서는 산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강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아주 외진 곳이었다. 그때 시골에는 군대에 붙어서 먹고 지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우리 집도 그랬고, 우리가 세를 든 집 주인 내외도 군인들에게 술을 팔면서 연명해 나가고 있었다. 그때는 밀주가 허락되던 시절이라 쌀로 술을 담아 동동주나 막걸리 따위를 만들어 주로 사병들한테 팔았다. 안주를 시켜 먹는 군인은 거의 없었고 대개 서비스로 내는 김치 한두 쪽이 안주 역할을 하였다. 어머니는 밥을 지을 때도 야전용 반합에다 지었고, 반찬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은 모두 다 아버지가 군부대에서 사진값 대신 받아온 통조림들이었다. 주로 미군들이 두고 간 시레이션이 많았는데, 워낙 못 먹던 시절이라 어쩌다 시레이션 한 상자가 생기면 뛸 듯이 기뻐했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아파서 보채거나 공연히 떼를 쓸 때면, 아버지는 “내가 꼭 시레이션 한 상자 얻어올 테니까 제발 울지 마라” 고 말했을 정도였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시레이션에서 나온 햄을 썰어 넣으면 맛이 일품이었다. 간식으로 먹은 것은 주로 건빵. 건빵을 콩기름에다 튀기면 아주 맛이 좋았다. 또 어머니는 건빵을 잘게 부수어 그것으로 반죽을 한 다음 튀김요리 비슷한 것도 만들어줬는데, 상당히 맛이 있었다. 또 내가 껌 대신 자주 씹었던 것은 수수깡이었다. 수수깡의 껍질을 벗기고 단물을 빨아 먹으면 아주 감칠맛이 났다. 산골이라 나물도 많았다. 어머니가 도라지나 더덕, 질경이 등을 캐러 갈 때 나도 같이 따라가 실컷 자연의 품에 안겨보곤 했다. 머루·다래도 많아 보존을 위해 따다가 상당 기간 묵혀두면 꿀같이 단 맛이 되곤 했다. 익모초가 무성한 들판, 흰 조약돌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강변, 그 강을 따라 흘러가는 맑디맑은 물……, 이런 것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고스란히 입력돼 있다. 어른들이 강으로 가 된장을 푼 어항을 이용하여 작은 민물고기들을 잡는 광경을 지켜보던 기억도 난다. 화천에서 다닌 초등학교의 초라한 학교 건물은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원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통학이 불가능했다. 학교로 가는 길 중간에 작은 강이 하나 있었고 그 강엔 외나무다리 하나만 얹혀 있었는데, 비가 와 강물이 불면 다리가 떠내려가곤 했기 때문에 학교를 쉬게 되는 일이 많았다. 또 곳곳에 뱀도 많아 겁 많은 나를 괴롭혔다. 어떤 때는 짓궂은 동네아이들이 뱀을 막대기에 꿰어 흔들면서 쫓아와 나를 혼내줬기 때문에 내가 까무라쳐버린 일도 있었다. <광마 마광수>



출처 : 마광수 따라가기
글쓴이 : 광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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