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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의미 / 마광수

OKeverything 2007. 1. 9. 09:52
< 마광수 칼럼 > 저항의 의미


기독교의 신약성서'마태복음'10장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 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일반적으로 예수는 '사랑'을 외치며 사해동포주의를 통한 '지상의 천국' 을 이룩해 보려고 애쓴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런 일반적 평가에 비춰 볼때 위에서 인용한 예수의 말은 섬뜩한 공포감과 전율감을 불러일으키기 에 족하다.

도대체 예수는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가족간의 갈등과 애증병존이 모든 불행의 근원이므로 각자 '홀로서기' 를 도모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런 설 교를 한 것일까.

아닌게 아니라 예수는 어머니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던 것은 물론, 아 버지 '요셉' 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여 '하느님' 이 자기 아버지라고 선언 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홀로서기' 를 도모하라는 말치고는 그 내용이 너무나 전투적이 다. 석가가 말없이 왕궁을 나와 아버지와 아내를 버리고 '천상천하 유아독 존'을 도모한 것과는 달리, 예수는 집안 식구들은 모두 다 '원수' 이므로 그들과 적극적으로 싸워나가라고 설교하고 있다.

예수를 신이 내려보낸 대리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 간주하여 위의 말을 해석해 보면, 예수가 한 말은 특별한 뜻을 지니지 않는 신경질적 발 언이 될 수도 있다.

예수는 당시 기성 유대교 종단의 지도자들을 몹시도 미워하여 그들을'위 선자' 로 몰았고, 당시 유대나라를 지배하던 로마제국보다 자신의 조국을 더 적대시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설교는 조국의 저주받은 미래에 대한 확신어린 예언으로 가 득차있는데, 이것은 사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면모와 일맥상통하는 것 이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조국과 동포에 대한 사랑어린 축복보다는 그 들의 '죄'를 핑계삼은 '살기어린 저주'에 한층 골몰해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적개심에 가득찬 야인정신(野人精神)이 이스라엘 예언자들의 공통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 역시 같은 동포들끼리의 막연한 '유대감'보다는 '철저한 변별과 응징'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말을 했는지 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예수의 이 말을 일단 인간에 대한 '일반론' 으로 해석하여, 인간은 누구나같은 인간을 증오하고 적대시하여 늘 괴롭히고 싶어하는 특 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같은 종(種)끼리 이를 갈고 미워하며 싸우는 동물은 사실 인간 이외엔 별로 없다.

게다가 예수의 말에 나오는 것처럼 같은 식구들끼리조차 이를 갈며 싸우 는 동물은 인간 이외엔 없다.

이렇게 해석해본다고 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예수는 인간의 그런 속성을 비난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싸우라고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 수는 인간 각자에게 '화평'보다는 '검'을 주려고 애쓰는 게 자신의 사명이 라고 했다.

도대체 예수는 무슨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예수가 인간의 '공격성향'을 긍정적인 측면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적 극 활용하라고 가르쳤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그는 같은 집안식구끼리라고 할지라도 서로 부단히 비판하며 싸워나가야만 참된 진리에 이를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특히 혈연이나 인맥에 의한 막연한 의리감이나 동지애가 인간사회를 병들 게 하는 원흉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 같다.

사람의 공격성향이 본능적인 것이든 학습에 의한 것이든 간에,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수놓은 수많은 전쟁을 보면서 인간에겐 남다른 공격성향이 잠재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공격성향이 가학욕구가 아니라 '반골정신'이나 '불복종'으로 나 타날때, 그것은 곧바로 '저항의식'이나 문화적 '반항'으로 이어져 인류전 체의 발전적 '변화'를 초래하곤 했던 것이다.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며 비폭력적 문화운동(말하자면 종교개 혁운동)을 일으키면서 '투쟁'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런 '문화적 투쟁'을 가리킨 게 아닌가 한다.

그는 설사 아비와 자식간이라 할지라도 반항과 투쟁을 멈춰서는 안될 것 이라고 설교하고 있다. 그러나 그(또는 그의 제자들)는 자신의 희생을 합 리화시켰고, 그러한 마조히즘은 마녀사냥 등의 또다른 사디즘을 불러일으 켰다.

이제부터 우리가 전개해 나가야 할 역사는 사디즘도 없고 마조히즘도 없 는 '창조적 반항'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진정한 '반항인'으로서 인간의 진면목이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예수의 말을 통해 혈연과 지연을 초월한 참된 저항정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